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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소설

[천악/샨하리] 붉은 늑대 4

"하아아.."

 

하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샨도 같이 앉으며 아까 라일이 얘기했던 계약에 대해 물어본다.

 

"하리, 아까 말했던 계약이.."

"큭, 그 자식- 만나기만 해봐라. 죽여버릴 테다.."

 

하리는 주먹을 꽉 쥐고 중얼거렸다.

 

"네?"

"아, 아냐. 계약말이지?"

 

사악하게 웃으며 라일을 욕하던 하리는 퍼뜩 정신을 차린다.

 

"우리들은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존중해줘. 서로 사랑하면 동성 결혼도 가능해. 결혼은 늑대인간끼리 하는 건 상관없는데 종족이 다를 경우, 즉 인간과 사랑에 빠지면 계약이라는 걸 하거든. 의미는 결혼과 동일해. 단지 차이가 좀 있을 뿐이지."

"헤에.."

"같은 종족이면 서로의 냄새가 베서 다른 늑대들이 집적거리지 못하게 하거든. 쉽게 말하면 영역 표시 같은 거야. 뭐, 우리들만 맡을 수 있는 냄새니까 인간들은 모르지. 그리고 기본 능력이 강해져. 늑대일 때나 인간일 때를 포함해서 말이지. 하지만 하나가 인간일 경우, 그런 건 소용없잖아? 그래서 늑대인간은 기본 능력이 강화돼서 인간으로 변신해도 거의 무적이 되고, 인간은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해줘."

"..신기하네요."

"후우, 나 혼자 너무 떠들었네. 아무튼 라일이 했던 말은 잊-"

"할까요?"

"뭐?"

 

하리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긍정의 물음이 되돌아왔다.

 

"미쳤어?! 인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한 평생 반려자 하나뿐이라고!"

 

무척 당황했는지 샨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친다.

 

"어라, 하리가 절 좋아한다고.."

 

샨은 하리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 그런 말 한 적 없어!"

"그런가요? 전 하리가 좋아졌는데, 아쉽네요."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한숨을 내쉰다.

 

"으극..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설마요. 전 진심이에요."

"그 말, 후회하게 될 거야."

 

하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샨에게 달려들어 침대로 넘어트렸다.

 

"엣? 잠, 하리?"

 

놀라서 벌어진 샨의 입술을 핥고 파고들었다. 가지런한 치열을 더듬고, 어쩔 줄 몰라서 방황하는 혀를 살살 어르고 달래며 깨문다.

 

"으응-"

 

샨은 눈을 질끈 감고 하리를 밀쳐보지만 단단한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흐읏.."

 

조금 괴로워 보이는 샨. 하리는 살며시 눈을 뜨고 붉어진 샨의 얼굴을 보더니, 입천장을 훑고 빠져나왔다.

그 사이로 둘을 이어주던 은사가 툭 끊어졌다.

 

"하아, 하.."

 

샨은 숨을 헐떡이며 살짝 풀린 눈으로 하리를 올려다본다.

 

"하리.."

"읏-"

 

하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쿵쾅거리며 날뛰는 심장 때문에 입술을 깨문다. 이성의 끈을 겨우 부여잡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계, 계약은 서로에게 자신의 모든 걸 줘야 해. 마음은 물론 몸까지. 그래야 진정한 계약성립, 즉 법적 부부가 되는 거야. 함부로 그런 말하지 마, 설레니까..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샨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하리를 끌어안는다. 움찔거리는 하리의 등에 얼굴을 기대며 속삭였다.

 

"하리.. 이렇게 불 질러놓고 그냥 가는 건가요?"

 

하리는 엄청난 자제력으로 참고 있었다. 허나 몽마의 유혹에 걸린 것처럼 다시 샨을 침대에 눕혔다.

 

아까와 달리 머뭇거리며 입술을 오물거린다.

 

"..후회할지도 몰라. 정말, 괜찮아?"

"음, 솔직히 좀 무서워요. 아까는 진짜 덮쳐지는 줄 알았어요."

"윽-"

"저희 만난 지도 얼마 안 됐지만, 체감상으로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하리를 볼 때마다 여기가 두근두근해요."

 

샨은 자신의 가슴 쪽으로 손을 올렸다.

 

"하리도 그런가요?"

 

하리는 말없이 샨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대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쿵, 쿵, 쿵-

 

"와.. 엄청 뜨거워요."

"늑대들은 비정상적으로 체온이 높으니까."

 

하리는 손을 달달 떨면서 샨의 윗옷을 간신히 벗겨낸다.

 

"후후, 왜 그렇게 손을 떨어요? 하리도 무서운가요?"

"다, 당연하지! 나도 처음이니까.."

 

손이 자꾸 미끄러져 옷을 벗기는 것만해도 시간을 꽤 잡아먹었지만, 샨은 차분하게 기다려준다.

 

"그, 그럼.. 한다?"

"아, 네."

 

두 개의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