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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소설

[천악/샨하리] 붉은 늑대 5 (완결)

***

 

 

느지막한 아침,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읏-"

 

살짝 허리를 움직이는데 통증이 밀려왔다. 어젯밤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봉긋 솟아있는 두 언덕을 지나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 풀로 뒤덮인 동굴까지, 쉴 틈을 주지 않고 탐했다. 몸에는 하리가 잔뜩 심어놓은 붉은 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득 옆을 바라보니 붉은 짐승이 네 발을 쭉 뻗고 자고 있었다. 덩치만 크지, 자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냥이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에 이불을 끌어당겨 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 깼는지 샨의 손바닥에 머리를 들이밀며 더 만져달라고 부비적거린다.

 

"정말이지.. 이럴 때는 완전 애기같네요."

 

하리는 가만히 손길을 느끼고 있다가 갑작스레 샨을 올라탔다.

 

"앗!"

 

방심하고 있던 샨은 하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진다.

 

하리는 꼬리는 휙휙 내저으며 샨의 입술을 핥는다. 그리고 서서히 내려가 샨의 몸을 감싸주던 이불을 치우고 붉은 꽃이 심어진 곳을 한 번 더 덧칠한다.

 

"잠, 흣.."

 

짐승이 되면 인간일 때와 달리 대담해지는 하리의 행동에 복잡미묘한 느낌이 들어 사타구니를 향하던 하리의 코를 잡아당겨 제지했다.

 

"끼잉-"

 

하리는 놓으라며 버둥거렸다.

 

"안돼요. 저도 늑대에게 당하는 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거든요."

 

샨이 계속 붙잡고 있자 으르렁거렸다.

 

"쓰읍, 지금 저한테 화낸 거에요?"

 

그런 게 아니라며, 어느새 촉촉해진 눈으로 샨을 바라보더니 귀와 꼬리를 축 늘어트렸다.

 

알고 있다. 인간 상태에서 힘을 다 써버린 탓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뿐, 샨은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다. 정말 악질인 여자다.

 

하리는 터덜터덜 네 발을 옮겨 '나 삐졌어.'하는 오오라를 풍기며 방구석에 몸을 말았다.

 

"하리- 삐졌어요?"

 

샨은 다시 이불로 몸을 가리며 하리에게 다가갔다.

 

"그르르.."

"미안해요, 장난인 거 알죠? 하지만 늑대한테 당하는 건 좀 싫을지도.. 인간일 때는 마음대로 해도 돼요."

 

하리는 언제 삐졌냐는 듯 몸은 움직이지 않고 꼬리만 신나게 흔들었다.

 

"후후, 기분전환할 겸 산책할까요? 저 씻고 나올게요."

 

 

 

***

 

 

 

집 밖을 나오니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오늘은 날씨가 시원하네요."

 

샨은 조금 걷더니 비틀거렸다.

 

"아."

 

샨이 넘어지려는 걸 하리가 잽싸게 지탱해준다.

 

"고마워요, 어젯밤에 하리가 너무 난폭하게 굴어서 허리-"

"크르!"

 

헛소리하지 말고 조심해.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하리는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샨의 옷자락을 물고 자기 등 뒤로 잡아당겼다.

 

"에? 타라는 건가요?"

 

샨이 올라타기 쉽게 바닥에 엎드렸다. 어디로 가는 건지 묻지도 않고 얌전히 하리에게 몸을 맡겼다.

 

 

 

***

 

 

 

바람을 타고 숲을 가로질러 인적이 드문 호수에 도착해 속도를 줄였다.

제법 튼튼한 나뭇가지에 샨을 조심히 내려준다.

 

"와, 이뻐요. 그림 속에 들어온 것 같네요."

 

샨의 말대로 절경이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초록색과 연녹색 물감을 찍어 발라 파릇파릇한 울창한 숲과 그 사이로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는 에메랄드 호수.

샨은 무언가에 홀린 듯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다 미끄러졌다.

 

"엣.."

 

바닥과 충돌하기 전, 붉은 짐승이 빛나면서 샨을 안고 가볍게 착지했다.

 

"후, 위험했네. 너! 일부러 그랬지?!"

 

십년감수,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하리는 샨이 떨어질 때 자신의 심장도 툭- 떨어질 뻔했다.

 

"아무렴 어떤가요."

"이게 진ㅉ..!"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야 할 소리가 샨에 의해 막혀버렸다. 샨은 하리의 입술에 촉- 입술도장을 찍으며 여유롭게 웃었다.

 

"하리가 지켜줄 거잖아요?"

"참나,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 다음부턴 조심해."

 

하리는 한숨을 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주 웃었다.

 

바람의 여신이 두 사람을 축복해주듯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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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완결★축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관심이라도 가져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덕력으로 쓴 거라 스토리 전개는 엉망이지만, 개인적으로 뿌듯하네요 :3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