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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소설

[천악/샨하리] 붉은 늑대 3

***

 

 

샨의 집으로 장소를 옮긴 후 하리를 침대에 눕힌 남자는 힘겹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사고였어요. 저도 구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랬군요.."

 

부스럭-

 

하리는 언뜻 들리는 대화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네가 왜 여기에.."

"정신이 드냐? 너 옮긴다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임마."

"누가 옮겨달래!?"

"하리! 제가 부탁했어요. 그리고 라일 씨 얘기 들어보니까 어머니는 사고로-"

"알아."

"네?"

"안다고. 그럴 놈도 아니고, 착해빠져서는.."

 

하리는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엄마는, 교통사고로 죽었어. 인간처럼 쇼핑하시는 걸 엄청 좋아하셨거든. 그날은 혼자 돌아다니셨었나 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만취한 인간새끼가 인도까지 침범하더니 엄마를 짓뭉갰더라."

 

담담한 말투에서 느껴지는 증오감.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하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들은 인간이 되면 능력이 저하돼. 각자 차이가 있겠지만, 엄마는 진짜 평범한 인간이 돼버리거든. 때마침 지나가던 라일이 목격한 거지. 라일이 말해줘서 안 거야. 그걸 듣고 있자니 누구라도 때려눕히고 싶었어. 원망이라도 안하면 당장이라도 인간들을 죽여버리고 말 테니까.. 그래서 라일을 원망했지. 왜 그 인간을 살려주냐고, 너도 똑같다고.."

 

"하리.."

"제일 원망스러운 건 나 자신이면서.."

 

조용히 듣고 있던 라일은 암울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샨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울한 얘기는 끝! 샨 씨는 하리랑 어떻게 아세요?"

"네? 아, 그게.. 며칠 전에 집에 가다가 만났어요. 처음에 본 건 큰 멍멍이였는데 말이죠, 후후-"

 

샨은 일부러 하리가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누가 멍멍이야!"

 

하리는 벌떡 일어나 샨을 째려봤다.

 

"오우, 반응 빠르네. 키킥, 그렇군요. 멍멍아, 기분은 좀 나아졌냐?"

"너..!"

"아이고, 무서워라."

 

라일은 몸을 떨어댔다.

 

"하- 됐다, 됐어."

"두 분은 친구인가요? 사이좋아 보여요."

"뭐어?! 너는 이게 사이좋아 보이냐?"

 

라일은 하리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웃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하하, 맞아요. 적이지만 둘도 없는 친구 사이죠."

"아, 그러면.."

"네, 전 인간입니다. 뭐, 전직 늑대사냥꾼이었죠. 지금은 보시다시피 백수에요."

"나, 안 돌아가. 그러려고 왔지?"

 

하리는 으르렁거리며 라일을 쳐다봤다.

 

"음- 그렇긴 한데, 생각이 바뀌었어. 맘대로 해."

"어?"

"너, 샨 씨 좋아하지?"

"무.. 무무무무슨, 소리야."

"역시나~ 네가 인간 집에서.. 특히, 짐승 형태가 아닌 걸 보면 이미 말 다했지."

 

하리는 자신의 적발처럼 얼굴이 붉어지면서 당황했다.

 

"그런가요?"

 

샨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보통 인간의 집에서 하루 이상은 못 있어요. 정이 들면 헤어지기 힘드니까."

 

라일은 슥- 하리를 바라보며 제법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여기에 계속 머물려면 적어도 계약은 해야할 걸?"

"계약, 이요?"

"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할 일 없으면 꺼져!"

 

하리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거렸다.

 

"풉. 네네~ 방해꾼은 사라지겠습니다. 가끔 놀러 올게-"

 

라일은 한 번 숨을 삼키고 하리와 샨을 훑어봤다.

 

"샨 씨, 하리를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라일 씨도 건강하세요."

"간다."

 

라일은 하리를 쳐다보고 웃더니 이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