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차가운 눈빛과 날카로운 성격.
친하게 지내는 인물도 없고 그런 관계를 유지할 마음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단지 말주변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여왕님.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고 붙임성있으며 귀여워진다.
서점에서 일했었다.
심지가 굳기 때문에 어긋난 일은 하지 않는 성격.
현재 그녀들이 있는 장소는 트리비아의 유일한 휴식처, 집이다.
그 공간에서 여성 두 명이 테이블의자에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은은한 조명이 어둠을 밝히고 서로 잔을 부딪히며 한 잔 두 잔.. 몇 잔째인지도 모를 정도로 분위기에 취해 마시고 있었다.
탁-
"저.. 트리비아씨,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그만 마셔요. 몸에 해로워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루이스 말이야! 그 놈은 우리보다 나이도 적은데 내가 하는 일에 막 참견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막무가내로 강요하고, 같이 안해주면 나랑 말도 안하고, 사내놈이 왜 그렇게 쪼잔한지.. 어휴, 누가 냉혈인간 아니랄까봐!"
"하하…"
타라는 트리비아의 신세한탄을 들어주며 자신 앞에 놓인 잔을 만지작거리다 술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진짜 속상해.. 타라도 보기에 내가 많이 꼴불견이지? 미안해, 그동안 쌓인게 많았나봐.. 너한테 이렇게 주절거리고 있고.."
트리비아는 자신의 비어있는 술잔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선 술병에 손을 가져가는데, 타라가 먼저 낚아챘다.
"..아니에요."
"응?"
"뭘해도 제 눈엔 예쁘신걸요."
"……"
"평소에 도도하고 섹시한 모습도 좋고, 지금처럼 술에 취해 어리광부리는 모습도 좋고… 꼴불견이라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어요."
"……"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인데 다들 무섭다고 난리들이니.."
트리비아는 술병을 다시 빼앗으려고 했지만 타라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으며 얼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술잔에 묵묵히 술을 채우는 타라의 행동을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타라?"
"그런 모습… 저만 보고 싶은데…"
"……"
"사람이란게 다 그런거죠. 자기 마음대로 안될 때도 있고,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고…"
타라도 취했는지 트리비아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자기 속마음에 있는 말을 주저리 내뱉고 있었다.
"새삼스레 루이스가 부럽네요. 저도 루이스처럼 트리비아씨 마음 아프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루이스랑 헤어지고 저랑.. 사귈래요?"
"……"
"저, 트리비아씨 많이 좋아하거든요. 아, 물론 취한 건 맞지만 거짓말은 아니에요. 그냥.. 알아줬으면해서… 아~ 말했더니 속 시원하다~"
탁-
타라는 반잔밖에 남아있지 않은 술을 깨끗히 비웠다.
"저 싫어하지는.. 마세요…"
"타…"
쿵-
"…ㄷ…ㅈ…해."
타라는 트리비아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 채 쓰러졌다.
"자는 모습도 잘생겼네, 후후…"
타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트라비아는 조용히 속삭인다. 그리고 술에 취해 잠들어버린 타라를 번쩍 안아들어 비틀거리며 자신의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다. 본인도 타라 옆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
어둑한 방안은 닫혀있던 커튼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로 인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으으… 머리야…"
타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달칵-
그 때 마침 트리비아는 욕실에서 씼고 있었는지 타월 한 장으로 아슬아슬하게 몸만 가리고 머리의 물기를 털면서 나오고 있었다.
"어, 깼어? 속은 괜찮아? 울렁거린다거나.."
"괜찮아요, 머리가 좀 아프네요.."
타라는 대답하면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트리비아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바로 했다.
"읏…"
"진짜 괜찮아?"
트리비아는 걱정이 되서 다가가려는데 타라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멈칫했다.
"괘, 괜찮아요! 진짜…"
"…어, 응.."
"그… 소리질러서 죄송해요… 그,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리니까 얼른 옷 입어요.."
"알았어."
"끙…"
타라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을 받으면서 안절부절 앉아있었다.
"됐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타라는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트리비아도 옷매무새 다듬고 뒤따라갔다.
"저기, 타라. 어제말이야…"
"…?"
"그 말 진짜지?"
"무슨 말이요?"
"에~ 기억안나?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
"아, 좋아하죠."
"음, 그게 아니라… 나랑 사귀자고…"
"푸흡! 쿨럭쿨럭… 켁…! 콜록콜록…"
"괘, 괜찮아!?"
"괘, 콜록, 괜찮, 콜록, 아요…"
물을 마시다 사례걸린 타라는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기침만 해댔다. 트리비아가 준 충격덕분인지 어젯밤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트리비아씨 마음 아프게 할지도 모르지만…'
'저랑, 사귈래요?'
타라는 그자리에서 주저앉아 자신을 자책했다.
'으아, 바보같이… 내가 얼마나 마신거야…! 으휴, 머저리! 등신아!! 그동안 감추고 있었는데! 트리비아씨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연애감정으로서 좋아하는 건데! 어쩌지, 분명 싫어할거야, 흑…'
"타라? 좀 진정됬어? 괜찮아?"
"…네"
"다행이네."
트리비아는 타라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같이 쭈그려 앉았다.
"트리비아씨."
"응?"
"저 싫어하지 마세요."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널 싫어해."
"어? 아니에요?"
"술이 아직 덜 깼나보네…"
"에…"
"눈 좀 갈아볼래?"
"눈은 왜.. 븝!?"
쪼옥-
트리비아는 타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굴을 잡아당겨 가볍게 입맞췄다.
어느 순간부터 욱신거렸던 머리가 맑아지면서 순간 타라의 뇌리에 스치는 트리비아의 한 마디.
'그래, 나도 좋아해.'
트리비아는 벙쪄있는 타라를 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제 기억나?"
"…에…뭐. 맞다, 루이스는요!"
"헤어졌어."
"에엑?!"
"조금 힘들긴 했지만 루이스도 받아주던 걸? 화해는 했어. 고마워."
"별로 한 건 없는데…"
"어제 큰 일을 했지, 나한ㅌ…"
"아아앗! 그만! 알았어요!"
"후후후. 어제는 타라가 너무 멋져서 반해버렸지만, 오늘은 그렇게 안둘거야."
"윽…"
당황하는 타라가 귀여운지 트리비아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미소를 지으며 타라를 품에 꼭 껴안았다.
어째선지 앞으로도 타라의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Happy Ending-